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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케빈에 대하여: 부모가 된다는 것은

by 탄수맘보 2021. 7. 11.

출처 구글 케빈에 대하여

 

 

모성애는 본능이 아니다.

에바(틸다 스윈튼)은 술과 약 없이는 잠들지 못하며 집과 차는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괴롭힌 것 같은 빨간색 페인트로 온통 칠해져 있지만 화도 내지 않고 속죄하듯 열심히 닦아냅니다. 길을 가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맞아도 그녀는 화를 낼 수 없습니다. 그녀는 즐거워할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생활합니다. 왜냐하면 그녀는 죄인의 엄마이기 때문입니다. 에바의 아들 케빈이 반 친구들을 모두 죽였기 때문입니다. 케빈은 왜 친구들을 죽였을까요? 과거로 돌아가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여행가 에바는 축제에서 만난 남자와 하룻밤을 보낸 후 갑작스럽게 계획에도 없던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됩니다. 마음의 준비가 안된 그녀는 그녀에게 일어나는 모든 변화가 낯설고 혼란스럽습니다. 아직 아기를 사랑해 줄 마음의 준비가 되질 않았죠. 출산 후 에바는 산후우울증으로 어린 케빈(에즈라 밀러)의 울음소리는 듣기 너무 힘듭니다. 차라리 공사장 소음이 그녀에겐 아기 울음소리보다 듣기 좋았습니다. 케빈이 말을 할 시기에도 엄마의 말에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아 자신이 울음소리가 듣기 싫어 공사장에 케빈을 데려가 청력에 문제가 생겼을까 싶어 병원에 데려갔지만 케빈은 정상이었습니다. 케빈이 제일 처음 엄마에게 말한 단어는 "엄마"가 아닌 "싫어"였습니다. 자신의 맘처럼 케빈이 커주질 않자 너무 힘이 든 에바는 케빈을 낳기 전 자신의 자유롭던 모습이 너무 그리웠습니다. 작은 악마가 태어난 것 마냥 케빈은 엄마가 행복해하는 것들은 모두 엉망진창으로 망쳐놨습니다. 마치 자신만 보란 듯이, 엄마에겐 악마 같은 케빈은 아빠에겐 사랑스러운 아들처럼 행동하는 이중성을 보입니다. 에바가 케빈을 키우기 힘들다고 해도 아빠는 믿어주지 않습니다. 늦은 나이까지 기저귀를 차는 케빈은 엄마와 얘기하면 약 올리는 듯 배변을 봅니다. 다 알면서 그녀를 약 올리는 케빈의 모습에 에바는 케빈을 밀쳐 케빈의 팔이 부러지게 됩니다. 화가 나더라도 아이를 다치게 하면 안 되는데 케빈의 팔이 부러진 모습에 에바는 많은 죄책감을 느낍니다. 케빈은 엄마의 죄책감을 이용하듯 더 심하게 굽니다. 에바는 케빈의 행동이 친구가 없어서 그런 걸까 싶어 여동생을 만들어 줍니다. 계획으로 생긴 여동생은 엄마가 마치 사랑할 준비가 된 듯 케빈의 어렸을 적과는 다르게 여동생을 예뻐합니다. 케빈은 자신과 달리 엄마가 여동생을 예뻐하니 틈만 나면 여동생을 괴롭혔습니다. 아빠는 아들은 원래 짓궂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립니다. 케빈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잔인해집니다. 결국 케빈이 여동생의 한쪽 눈을 실명시켜도 죄책감 따위 없는 사이코패스 적인 모습에 엄마는 위협감을 느끼지만 아빠는 불가피한 사고로 여기며 좀 더 조심하지 않은 엄마 탓이라고 합니다. 케빈은 자신의 생일이 돌아오기 전 아빠, 여동생, 학교 친구들을 모두 죽인 후 아무도 없는 곳을 바라보며 커튼콜 인사를 보낸 후 자기 발로 경찰서로 끌려갑니다. 2년 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케빈의 면회를 간 에바는 2년 동안 생각할 시간은 충분히 주었던 거 같아 그동안 케빈이 수많은 잘못을 저질러도 한 번도 묻지 않았던 질문을 합니다. "왜 그랬니" 케빈은 엄마는 이유를 알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모르겠다고 합니다. 마치 엄마의 그 질문을 기다린듯한 케빈은 에바와 포옹을 하며 면회를 끝냅니다. 지금까지는 에바는 미성년자인 케빈이 자신의 잘못된 양육으로 비뚤어진 것 같아 죄책감을 느끼며 죄인처럼 살아왔지만 교도소에서 성인을 맞이하는 아들을 보며 이제 자신이 부모로서 책임과 도리를 다 했다는 듯이 홀가분하게 걸음을 떼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모든 건 엄마 탓일까?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아 태어나므로 어느 정도는 부모를 닮은 기질을 보입니다. 하지만 아이는 성장할 수록 부모에게서 독립적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부모의 양육보다는 외부적인 요소에 더 많은 영향을 받으며 성숙하게 성장합니다. 케빈이 학교 친구들을 죽이고 나자 피해자의 부모들은 다들 엄마인 에바를 탓하고 미워합니다. 엄마의 잘못된 양육 때문이라고, 케빈의 잔혹성은 마치 날 때부터 사이코패스 같지만 그렇지 않았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케빈이 어렸을 때 아파서 쓰러진 적이 있는데 정성껏 자신을 간호해주는 엄마의 모습에 케빈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합니다. 그때만큼은 보통의 아이와 엄마 같은 관계를 보이며 엄마도 케빈에게 정성과 사랑을 쏟고 케빈도 엄마에게 사랑을 느낍니다. 케빈은 자신과 엄마와의 사이를 아무에게도 방해받기를 싫어했습니다. 그게 아빠일지라도, 이런 케빈은 왜 그렇게 변한 걸까요? 왜 케빈은 엄마를 미워하며 왜 엄마만 죽이지 않고 모두를 죽였을까요? 부모는 아이의 잘 못의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 건지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였습니다.

 

색이 상징하는 의미

영화속 빨간색은 자유로운 삶의 에바, 파란색은 케빈, 그리고 에바와 케빈의 우호적이 관계를 나타내는 노란색이 등장합니다. 엄마가 되기 전 자유로운 삶을 의미하는 빨간색을 엄마가 된 에바가 계속 지우고 닦아냅니다. 마치 예전의 삶은 이제 없다고 지우는 듯이 빨간색을 지워낸 에바는 파란색을 온 방을 다 칠합니다. 케빈을 받아들인다는 거처럼. 그런 엄마의 사랑과 보호를 뚫고 나가기라도 하는 듯이 케빈은 노란색 과녁을 맞히고 노란색 화살로 엄마를 위협합니다. 처음은 내용을 보기 위해 봤다면 두 번째는 색이 상징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감상하면 좋을 것 같은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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